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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2smi by kisses

 

콜린 퍼스

 

줄리안 무어

 

매튜 굿

 

니콜라스 홀트

 

원작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감독 / 톰 포드

 

싱글맨
(A Single Man, 2009)

 

1962년 11월 30일 금요일

 

잠에서 깨면 '있다'와
'지금'이 떠오른다

 

지난 8개월 동안
깨어 나는 것은 고통이었다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현실을
천천히 깨닫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는 걸
좋아한 적이 없다

 

짐이 그런 것처럼
침대를 박차고 나가

 

미소와 함께
하루를 맞아본 적 없다

 

너무 행복해 하는 그를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바보들이나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라고 얘기하곤 했다

 

바보들이나 단순한 진실을
외면할 수 있을 거라고

 

현재가 단순히 현재가 아니라는

 

차가운 진실을

 

어제의 다음 날

 

작년의 다음 해

 

빠르게 혹은 천천히

 

올 것은 오고야 만다

 

그는 날보고 웃으며
뺨에 키스해주곤 했었다

 

내 모습을 갖추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내게 기대하는 것들과
행동 방식에 나를 맞추는 시간

 

옷을 다 차려 입고
마지막 단장을 끝내면

 

살짝 딱딱하지만 완벽한 나
'조지'가 된다

 

난 나의 역할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선
얼굴은 보이지 않고

 

곤경에 빠졌다는 인상만
느껴질 뿐이다

 

또 이 지긋지긋한 하루를
견뎌야 해

 

살짝 멜로드라마틱한
하루일 듯하다

 

그리고 또...

 

가슴이 미어져 내린다

 

가라앉고 있는 것 같다

 

물 속 깊이
숨을 쉴 수 없다

 

더 필요한 건 없을까?

 

아니, 완전히 맘에 들어

 

뭐 하는 거야?
잠깐, 잠깐

 

온실에서 이러기엔
좀 그런 것 같은데

 

천막 쳐 있잖아, 아저씨

 

우리는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이라며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안개 속이다

 

하지만 결심을 한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를 것이다

 

이제야 하셨네

 

여기 하루 종일
비 오는 거 알아?

 

집에 갇혀서 전화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잖아

 

전화 잘못 걸었나 보군요
조지 팔코너 씨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기다리는
전화가 있어서요

 

전화 맞게 거셨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해롤드 애커리라고 하는데
짐의 사촌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애커리 씨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돼 유감입니다

 

네?

 

자동차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요?

 

눈이 워낙 많이 와서
도로가 다 얼었거든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짐이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망한 걸로 보입니다

 

아...

 

어제 오후에 사고가 났는데

 

짐 부모님은 선생님께
알리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전화하는 것도
모르시지만

 

그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워요

 

충격이 크실 겁니다

 

저희 모두도 그렇거든요

 

네, 그렇군요

 

장례식은 언제입니까?

 

내일 모레입니다

 

그럼 전화 끊고 어서
비행기표를 예약해야겠네요

 

가족만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겠죠

 

아무튼 전화 줘서 고마워요

 

- 애커리 씨?
- 네

 

개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개들이요?

 

같이 있던 개는 죽었는데
한 마리 더 있었나요?

 

작은 암컷이 있었어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른 개 봤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안녕히 계세요

 

응, 찰리

 

난 줄 어떻게 알았어?

 

샬롯, 아침 8시 전에 나한테
전화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너무 일찍 전화했나?

 

좀 툴툴거린다

 

아냐, 머리가 좀 아파서

 

나도 전화할 참이었어

 

약속한대로 오늘밤
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괜찮지!
우리 일주일이나 못 봤잖아

 

네 약발 떨어져서 그리웠어

 

미안했어

 

좋아, 그럼 오늘밤에 보자
어서 나가봐야겠어

 

학교에서 끝나면 전화할게

 

좋아, 이따 봐

 

- 안녕, 꼬맹이
- 안녕, 아저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 얼굴이
안 좋아 보이세요

 

안녕하세요, 앨버
아니에요 잠을 설쳐서 그래요

 

빵을 냉장고에서 꺼내 놓는 걸
깜박했더군요

 

그래야 신선하거든요

 

오늘 아침엔
너무 신선하더군요

 

책상 위에 서류들을 뒀는데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둬 주세요

 

그리고 펜 잉크가 새서
침대에 묻었어요

 

- 제가 치울게요
- 앨버?

 

- 네, 선생님
- 고마워요

 

오늘 멋지네요

 

약속한 대로 쿠바에서의...

 

소련 핵미사일 구축을
감시한 결과

 

지난 몇 주간 확실한
증거를 포착했습니다

 

- 팔코너 교수님
- 네

 

아침에 한 학생이 찾아와
교수님 주소를 물었어요

 

내 주소를?

 

- 그래서 알려줬나요?
- 네

 

알려줬는데요

 

문제는 아니겠죠

 

알려주지 말걸 싶었지만

 

괜찮은 학생 같아서
저도 모르게...

 

머리 모양이 좋아요
아주 잘 어울려요

 

늘 멋진 모습이에요

 

생기 있는데다
멋진 미소까지

 

'아르페쥬' 향수

 

네?

 

정말 아름다워요

 

핵공격 기지를
건설 중인 걸로...

 

안녕, 돈

 

안녕하세요, 조지

 

안녕하세요

 

응, 그랜트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무슨 일 있어요?

 

주위를 둘러봐

 

학생들은 기업에 취직할
생각밖에는 없어

 

콜라나 마시고 TV나 보는
애들이나 키우게 되겠지

 

그 애들은 입을 떼자마자
TV광고나 따라 하고

 

물건이나 때려 부수겠지

 

오늘 이상하세요

 

자네도 학생 가르치는 게
즐거울 리는 없겠지

 

외국말로 강의하는 것도
아닌데

 

병든 소처럼 멍하니
쳐다보고 들이나 있고

 

우리가 멸종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음 말해주게

 

시기가 시기잖아요

 

핵전쟁의 위기가 도사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요

 

그런 건 걱정이 안 되시나요?

 

- 자넨 걱정돼?
- 그럼요

 

방공호에 대한 글 드린 거
읽어봤어요?

 

저희 건 다 만들어 가요

 

도급업자들이 지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장을 해놔서 겉에서는
뭐가 있는지 절대 몰라요

 

그래?

 

방공호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들 몰려올 거 아니에요

 

그래서?

 

소련이 미사일을 쏘면
감상적이 될 시간은 없는 거죠

 

감상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군

 

'여러 해 여름이 지난 뒤
백조 죽다'

 

3주 전에 헉슬리의 이 소설을
읽으라는 숙제를 냈었는데

 

제목과 이야기의
관계에 대해 말해볼까?

 

- 그래, 몽 군
- 관계가 없습니다

 

여자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다고
고민하는 부자 남자 얘기인데

 

젊은 녀석은 돈을 노린다고
생각하고...

 

러스

 

그래, 허쉬 군

 

79페이지에 보면 프롭터가
말하길

 

성경에서
가장 어리석은 문구는

 

'그들은 이유 없이 나를 증오한다'
라고 했는데

 

나치가 유대인들을 증오하는데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까?

 

- 헉슬리는 반유대주의자입니까?
- 아니

 

헉슬리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나치가 유대인을
증오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대인 증오는
이유가 있었지

 

단지 그 이유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유는 상상된 것이었고

 

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유대인은 이 논의에서
잠시 제외해보자

 

다른 소수자를 생각해보자

 

눈에 띄지 않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

 

소수자는 많다
예를 들면 금발이나

 

주근깨가 있는 사람들

 

하지만 여기서 소수자들은
다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진정한 위협이든
상상의 위협이든

 

그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 소수자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 두려움이 소수자들을
박해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거기엔 늘
이유가 있다

 

두려움이 그 이유다
그들도 인간인데 말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

 

잠시 얘기가
빗나간 것 같은데

 

이렇게 하지

 

오늘 헉슬리는 잊고

 

두려움에 대해 얘기해 보자

 

두려움이야말로 결국
우리의 진짜 적이니까

 

두려움이 우리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두려움은 우리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정치인들이 정책을
파는 방식인 거다

 

광고계가 우리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강매하는 방식이다

 

생각해보자

 

공격받을 거라는 두려움

 

빨갱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두려움

 

작은 나라 쿠바가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릴 위협한다는 두려움

 

흑인 문화가
세상을 휩쓸 거라는 두려움

 

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에
대한 두려움

 

그건 좀 두렵긴 하다

 

나쁜 입 냄새가
우정을 망칠 거라는 두려움

 

늙어간다는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쓸모없다는 두려움

 

해야 할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두려움

 

좋은 주말 보내길

 

선생님, 잠시 시간 되세요?

 

평소에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잘 이해하지들
못하는 것 같던데

 

못하긴요, 저도 늘
뭔가가 두렵지만

 

얘기하진 않았거든요
바보같이 보일까 봐

 

로이스한테도 못해?

 

걔는 무서운 게 없을걸요

 

누구나 무서운 건 있어, 케니

 

선생님은요?

 

자동차

 

LA에 살면서
차를 무서워하다뇨?

 

그렇긴 하지

 

전 가끔 두려움에
마비될 지경이 돼요

 

공포에 가득 차서
폭발해버릴 것만 같아요

 

개인적인 질문 드려도 돼요?

 

원한다면

 

약 해보신 적 있어요?

 

내가 몇 살로 보이니?

 

한 번도 없어요?

 

없을 순 없지

 

뭐 해보셨어요?

 

캠퍼스에서 그런 얘기
하고 싶지는 않은데

 

전 약 때문에 견뎌요

 

메스칼린 해 보신 적 있어요?

 

내 취향은 아니다

 

한 번 했었는데 눈썹을
밀었었지, 볼썽사납게

 

네?

 

거울을 봤던 거지

 

메스칼린을 하고
거울 보는 건 금물이야

 

눈썹이 얼굴을
덮고 있는 것 같기에

 

눈썹 한쪽을 밀어버렸지

 

창피하게도 6개월 동안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어

 

그 후로는 안 하셨어요?

 

내 말 안 들었어?
눈썹을 밀었었다니까

 

경험 삼아 해 본 것뿐
또 눈썹 밀 생각은 없어

 

혹시...

 

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갖고 있으니

 

제 정신이니?

 

죄송해요, 선생님
이런 얘기 불편하실 텐데

 

어째서?

 

로이스는 선생님이
지나치게 신중하대요

 

오늘 수업만 해도

 

헉슬리에 대해 떠드는
잡소리를 듣고만 계셨잖아요

 

넌 그 잡소리에
동참하지 않더구나

 

선생님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떠들게 그냥 두더니
바로 잡아주셨잖아요

 

처음부터 알고 있는 대로
말씀해주지 않으세요

 

네 말이 맞을 수도
어떤 부분에선

 

지나치게 신중한 건 아니야

 

다만 어떤 사안은
캠퍼스 안에서

 

완전히 다룰 수 없을 뿐이야

 

누군가는 오해할 수 있거든

 

오늘 시도는 했지만
잘 된 것 같진 않아

 

뭐 사실 거예요?

 

아니
학장실에 가는 길이다

 

그럼 저랑 얘기하느라
반대로 걸으신 거예요?

 

그럼 안 되나?

 

보답을 해드려야겠네요

 

하나 고르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고맙다

 

파란색을 고르실 줄 알았는데

 

어째서?

 

파란색은 영적인 걸
상징하잖아요

 

내가 그렇게 보여?

 

그럼 넌?
빨간색?

 

빨간색은 뭘 의미하죠?

 

많지

 

격정, 욕정

 

재밌네요

 

그럼...

 

또 뵐게요

 

여보세요?

 

뭐하고 있었어?

 

책이나 좀 봤어

 

- 수업은 어땠어?
- 괜찮았어

 

학교 나서는 길인데
필요한 거 있나 해서

 

고맙기도 해라
괜찮은 것 같은데

 

맞다!

 

진 한 병만 사다 주라

 

'탱커레이'로
병 색깔이 맘에 들더라

 

병 안에 든 게
맘에 들겠지

 

몇 시까지 갈까?

 

7시까지
괜찮겠어?

 

좋아, 그때 보자

 

나중에 봐, 조지

 

바이, 꼬맹이

 

예쁘군

 

팔코너 교수

 

뭐지?

 

어디 가세요?

 

차를 타는 이유가
그거 아닌가?

 

아뇨, 혹시 휴가 같은 거
가시나 해서요

 

뭐?

 

사무실을 정리하시기에

 

용건이 정확히 뭔가?

 

시간 되시면 술이나 같이
할 수 없나 해서요

 

그건 왜지?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하실 것 같아서

 

친구가 필요해 보이셔서요

 

그래?

 

네, 그래 보이세요

 

그럴 수도 있겠지

 

다음에 하도록 하지
늦었거든

 

아무튼 초대는 고맙네

 

아까 나눈 얘기도 즐거웠고

 

메스칼린은 멀리 하도록

 

안녕하세요, 팔코너 씨

 

- 잘 지냈죠
- 그럼요

 

- 보관함 열어보시게요?
- 네

 

따라오세요

 

여기 있습니다

 

여기 서명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자기 친구 샬롯에 대해
설명해봐

 

뭘 알고 싶은데?

 

몰라, 둘이 되게
친해 보이더라

 

둘이 사귀기라도 했던 것처럼

 

- 같이 잔 건 아니겠지?
- 잤어

 

그런데?

 

어렸을 때 몇 번 자긴 했어

 

아무 의미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보다는 찰리한테 더
많은 의미가 있나 봐

 

예전 런던에서 일이야

 

난 찰리를 사랑하고

 

아주 가까운 친구지만
그게 다야

 

헷갈리는데

 

여자랑 자면서
나랑은 왜 같이 있는 거야?

 

남자를 사랑하게 됐으니까

 

너를 사랑하게 됐으니까

 

어릴 때는
여자랑 자곤 하지 않아?

 

- 난 안 자봤어
- 농담도

 

정말이야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어

 

너 정말 모던하다

 

사실 그게 너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어

 

자신에 대한 확실함

 

네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확실해 보여?

 

그렇고말고

 

다 끝났습니다

 

네, 팔코너 씨

 

오늘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수표책을 잃어버렸어요
현금도 인출해야 하고요

 

일진이 안 좋군요

 

잠시만요

 

엄마가 짙은 눈썹은
개성 없는 거라는데

 

아저씨 눈썹은
예쁜 것 같아요

 

네 눈썹도 예쁘구나

 

왜 그렇게 슬퍼 보여요?

 

찰톤 헤스톤 만나볼래요?

 

'벤허'에 나오는

 

제가 키우는 전갈이에요

 

매일 밤 먹이를 던져주고
죽이는 걸 구경해요

 

아빠가 검투장 같대요

 

그래서 오빠 톰이
콜로세움 기둥을 세웠어요

 

무대 디자이너가 되고 싶대요

 

아직 거미를 다 안 먹었네요

 

어젯밤에 먹은 나방이
소화가 다 안 됐나 봐요

 

아빠는 아저씨도 검투장에
던져버리고 싶대요

 

농담이시겠지
그런데, 왜?

 

밝은 색 단화를 신어서요
사내답지 못 하대요

 

그럼 오빠도
사내답지 않은 것 같은데

 

오빠도 밝은 색 단화
신거든요

 

머리 감을 때
트리트먼트를 꼭 하게 해요

 

계란으로

 

머리카락 빛나요?

 

얘, 왜 아저씨를
귀찮게 하고 그래?

 

귀찮게 한 거 아니에요

 

잘 지냈어요?

 

반가워요, 조지

 

오늘 친구들 몇 초대해서
술이나 하려는데 올 수 있어요?

 

고맙지만
선약이 있어서요

 

그럼 다음에

 

제니퍼, 팔코너 아저씨
일 보시게 우린 가자

 

갈게요, 조지

 

잘 가요, 수잔
잘 가라, 제니퍼

 

뭘 찾아드릴까요?

 

이 총에 맞는
총알 좀 주게

 

 

정말 오래된 총이네요

 

한 자루 사면 하나 더 드리는
행사하는데

 

아내 분에게
선물하시면 좋을 텐데

 

괜찮네
총알만 주게

 

 

여기 있습니다
다른 건요?

 

됐네

 

그럼 2달러 29센트입니다

 

죄송해요
짖지는 않았겠죠

 

차에다 혼자 두고 가면
가끔 이렇게 흥분해요

 

멋진데요
이름이?

 

'인디아'요

 

들어가

 

인사해야지

 

털이 부드러운
폭스 테리어를 키웠었어요

 

이젠 자주 못 보지만

 

잘 구운 토스트 냄새가 나요

 

아직 강아지라서 그래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가씨도요
잘 가라, 인디아

 

- 죄송합니다
- 괜찮아요

 

제 잘못이니
담배 다시 사드릴게요

 

괜찮아요

 

아뇨, 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병 깨진 거 죄송합니다

 

- 여기 있어요
- 고맙습니다

 

저기요!
한 대 드려요?

 

괜찮아요

 

한 대 줘요
안 될 것도 없죠

 

- 카를로스예요
- 뭐라고요?

 

카를로스라고요
제 이름 물었잖아요

 

괜찮아요?

 

아! 네

 

네, 죄송해요

 

정말 잘생겼군

 

끝내주는 얼굴을 가졌어

 

맘껏 즐겨
대단한 선물이니까

 

- 그 쪽 스페인어 훌륭한데
- 고마워

 

더 자주 썼어야 했는데

 

그럼...

 

지금부터 쓰면 되지

 

뭐 하는 겁니까?

 

같이 가자는 거 아니에요?

 

아뇨

 

아무튼 고맙소

 

저 노을은
스모그 때문이라던데

 

이런 하늘색은 본 적이 없군요

 

혐오스런 것들도
아름다울 때가 있지

 

담배 한 대 더 줄래요?

 

물론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거
확실해요?

 

확실해요

 

어디서 왔죠?

 

- 마드리드요
- 마드리드?

 

어떻게 여기까지?

 

말하자면 길죠

 

일하던 LA의 한 호텔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같이 살아도 된다고 하고
에이전트도 구해 준댔는데

 

스페인어 억양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죠

 

그 쪽 억양 귀여운데

 

영어도 훌륭하고

 

어디서 배웠지?

 

어릴 때 엄마 남자 친구가
미국인이었어요

 

어머니는 마드리드에?

 

네, 엄마는 미용사죠

 

떠나기 전에
내 머리도 잘라줬어요

 

맘에 들어요?

 

제임스 딘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제임스 딘보다 더 나은데

 

정말요? 고마워요

 

아무도 날 찍지 않더라고요

 

난 그쪽이
날 찍은 줄 알았는데

 

오늘은 나한테
좀 심각한 날이에요

 

말해 봐요

 

당신 같은 사람이
심각할 게 뭐 있어요?

 

난...

 

오랜 연인을 잊으려
노력 중이라고 할까

 

엄마가 애인은
버스 같은 거래요

 

조금 기다리면
다음 버스가 온대요

 

가봐야겠어요

 

나 괜찮은 남자예요

 

당신에게 필요한 건
당신을 좋아해줄 사람이잖아

 

고마워요

 

가야 해요

 

네가 바꿀 차례야

 

싫어
자기가 바꿀 차례야

 

내가 트는 건
좋아하지도 않잖아

 

판 바꾸면 5달러 줄게
늙어서 일어나기도 힘들어

 

꼭 편리할 때만
나이든 티 내더라

 

뭐 읽고 있어?

 

'변신'

 

그런 우울해 빠진 것 좀
그만 읽어

 

수업 준비 하는 거야

 

그런 너는 얼마나
세련된 걸 읽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

 

잘난 척 좀 그만해

 

저 팔자 늘어진 녀석

 

- 부럽지 않아?
- 어째서?

 

원하는 엉덩이 냄새는
다 맡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지

 

그거 말고

 

원하는 것만 하잖아
어제만 해도 그래

 

앞뜰에 있는데
옆집 수잔이 말을 걸더라

 

그 집 꼬마 녀석
크리스토퍼가

 

몹쓸 장난감 총을 들고
방방대고 뛰어다니는데

 

그때 우리의 강아지가

 

벌떡 일어서더니
다리를 치켜들고서

 

크리스토퍼의 운동화에
오줌을 갈기는 거야

 

그 녀석한테도 다 튀겼지

 

난 물론 매우
미안한 척을 해줬지

 

아주 깔끔하게 엿을 먹이는데
자기도 봤어야 했어

 

그동안 그 녀석들이
괴롭힌 데 대한 보답인 거지

 

자기도 배울 게 있다니까

 

얘들은 밤새 고민하지 않아

 

우리들한테 원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얻는지 알거든

 

아주 세련되게
우리한테 빌붙어 사는 거지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한 건가

 

너희 어머니처럼

 

얘들은 현재를 살 줄 알아

 

바로 지금처럼

 

여기 이렇게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겠어?

 

지금 죽더라도...

 

아쉬울 게 없어

 

난 아쉬운 게 하나 있어

 

말 좀 그만 하고
가서 레코드 판이나 바꾸지 그래

 

좋은 답일세

 

덴버 엄마네 갈 때
쟤들 데려갈까 하는데

 

자기만 괜찮다면 말이야

 

엄마가 예뻐하거든

 

자기 말대로
서로 통하는 게 있어서인가

 

아저씨는 거기 계세요

 

'넥타이는 느슨하고 넓게 맬 것'

 

진 안 잊어버렸어

 

십 분 후에 봐

 

크리스토퍼

 

내가 널 죽이면 좋겠니?

 

모르겠는데요

 

그거 들고 설치다간
그렇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놈의 총 집어치우고
집에나 가

 

보니까 너무 좋다

 

어서 들어와

 

냄새 좋은데

 

나 배고파
가정부는?

 

오늘 휴가 줬어
요리는 내가 하고

 

네가?

 

그럼, 새로운 것도
시도했는걸

 

네 요리 자체가
새로운 시도다

 

비꼬지 마셔

 

나 오늘 기분 좋거든
재미있게 놀 거야

 

벌써 새해 결심도
두 가지나 해뒀어

 

결심 하나
지긋지긋한 옛 남편들과

 

연락 한 번 없는
애들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 다른 건?
- 뭐?

 

결심 말야

 

아, 결심 둘
담배도 술도 끝까지 한다

 

그러니까 어서
술이나 만들어줘!

 

나 진토닉 마실 거야
그러니까 오늘 조심해!

 

대령하겠습니다

 

오늘밤 와줘서 고마워

 

고마울 거 없어

 

널 봐야 할 이유가 있었어

 

됐어, 조지

 

넌 예쁜 짓을 할 때마다
그걸 부끄러워하더라

 

때 이른 새해 결심을 위해서!

 

건배

 

네 결심은 뭐야?

 

과거를 완전히 깔끔하게

 

영원히 청산하자

 

불 좀 붙여줄래?

 

자기, 얼굴이 안 좋아

 

심장발작 증세
있었던 거 기억나지?

 

- 심장발작 아니야
- 그게 뭐든...

 

무엇보다도
섹시해 보이지가 않아

 

난 괜찮아

 

기분 괜찮아
조금 피곤할 뿐이야

 

- 잠을 못 자서 그래
- 그건 어쩔 수 없어

 

너랑 짐은
16년을 함께 했었잖아

 

나도 매일
리차드 생각이 나는데

 

혼자되는 건 힘들어

 

그래도 넌 일도 있고
생활도 있잖아

 

우리 저녁이나 먹어볼까?

 

나 진짜 열심히 했단 말야

 

진짜야?

 

나이 먹는다는 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니까

 

저번에는 학생 하나가
나한테 '어르신'이라는 거야

 

'늙는다'는 말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어르신'이
되는 것도 싫고

 

여긴 너무 단조로워지고 있어
그래서 미국으로 온 게 아닌데

 

문화와 양식이
완전히 몰락했어

 

요즘 애들은 양식도 없어

 

며칠 전에 세차장에서

 

젊은 애가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진짜 금발이냐고 묻는 거야

 

뭐라고 했어?

 

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랬지

 

'물구나무를 서면...'

 

'향긋한 냄새가 나는
갈색 머리를 가졌단다'

 

- 설마!
- 그랬다니까

 

더 웃긴 건 알아듣지도
못 했다는 거야!

 

넌 참 입이 걸어
런던에서도 그랬잖아

 

네 머리에 술 쏟은
레즈비언 기억나?

 

네가 도넛만큼 큰
거시기를 가졌냐고 물었잖아

 

당연하지!

 

다시 런던으로 가자
우리 둘이

 

싫어

 

가고 싶어 하잖아

 

가끔은 그렇지

 

짐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영국에 살고 싶어 했거든
살면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했어

 

정말 영국으로 갔을 것 같아?

 

모르지
지금 그 얘기를 해서 뭐해

 

이건 뭐야?

 

엄마 결혼반지야

 

청소하다 서랍에서 찾았어

 

찰리, 우리 둘 다
술 한 잔씩 더 해야겠다

 

잠깐, 잠깐

 

나 이 노래에 꽂혔어

 

미쳤구나

 

같이 추자, 아저씨도

 

가만 있어봐

 

고마워

 

담배 붙이는 손놀림이
능숙한데

 

늘 이걸 하고 싶었어

 

담배도 안 피우잖아?

 

16년간 참았지
짐이 싫어했거든

 

이제 못할 게 뭐야
이런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너무 좋다
너랑 이렇게 누우니까

 

이거 그립지 않았어?

 

우리 둘 어떻게 됐을까?

 

진지한 관계를 맺고
애도 낳고

 

내겐 짐이 있었잖아

 

아니, 진짜 관계 말이야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너하고 짐이 함께 한 것도
아름다운 일이었지만

 

그건 뭔가의
대체였던 것뿐이잖아

 

이제 와서
한다는 얘기가 이런 거야?

 

짐이 진정한 사랑의
대체물이었다고?

 

짐은 어느 누구의
대체도 아니었어

 

이해하겠어?

 

짐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어!
그 어디에도!

 

리차드와 너와의 관계는
얼마나 진짜였는데?

 

널 떠난 지 9년도 넘었어

 

우린 16년을 같이 했고

 

죽지만 않았으면
지금도 같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우리 사이가
진짜가 아니라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둘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우리 둘한테 불가능했던 그걸
질투했나 봐

 

솔직히 난 어느 누구와도
그런 사랑조차 해 본 적 없어

 

리차드가 날 사랑했었는지도
모르겠어

 

내 겉모습은 사랑했겠지

 

그리고 내 딸...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도

 

다 자라면 떠나버리더라

 

네 삶이 잘못된 건 없어

 

단지 자기 연민을
심하게 즐기고 있을 뿐이지

 

그럼 넌 아니고?
너도 나만큼 딱해

 

자기 연민이
내 유일한 즐거움은 아냐

 

그럼 나도 아냐

 

날 불쌍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
털끝만치도 없어

 

리차드를 잡으려고
너무나 오래 노력했어

 

나만 빼고 모두가
끝난 사이란 걸 아는데도

 

이제 아이도 다 컸어
난 혼자 여기서 뭐지?

 

응? 뭐냐고?

 

친구 많잖아
넌 괜찮을 거야

 

친구야 많지만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지

 

네가 호모 자식만 아니었다면

 

우리 둘 행복할 수 있었어!

 

짐을 잃고 나서야
너와 있을 수 있지만

 

곧 다른 사람에게 널 잃겠지
여자에겐 힘든 일이야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는데

 

이젠 진 한 병만
내 곁에 남았어

 

그럼 도넛을
같이 먹어보던지

 

미워

 

샬롯, 넌 너무 극적이야

 

하마터면 나 여기
눈물 한 방울 맺힐 뻔했어

 

이제 그만해

 

넌 지금도
끝내주게 예뻐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지거나

 

별것 아닌 거에 흐느끼는 걸
그만두지 못 하겠거든

 

런던으로 가

 

인생을 바꿔

 

여자로 사는 게 싫으면
여자처럼 행동하지 마

 

다 아는 것처럼 말하네

 

난 아무것도 몰라

 

그렇게 잘 알면
너도 새롭게 시작하지 그래?

 

스탠퍼드 교수채용 제안
받아들여

 

그 작은 학교 불평 그만하고

 

다른 데로 갈 수 있으면서

 

내 일을 폄하하지 마

 

미안해
말이 좀 심했다

 

가고 싶으면 싶을수록
두려워져

 

뭐가 두려운데?

 

런던에서 난 젊고 풋풋했어
모든 걸 다 가졌었지

 

미국행은 꿈만 같았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돌아가는 건 패배를 의미해

 

계획한 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는 인정

 

대부분이 계획한 대로
살지 않아

 

넌 과거에 살고 있어
미래를 생각할 때가 됐어

 

과거에 사는 것이
나의 미래야

 

넌 안 그럴 수도 있지
남자니까

 

게다가 오늘밤엔
나쁜 남자고

 

조금만 더 우릴
불쌍해하면 안 될까?

 

한 잔 더 마시자

 

- 응?
- 난 가야 돼

 

- 배웅해 줘
- 싫어, 너무 재밌잖아

 

- 가야 돼
- 안 돼

 

언제 다시 봐?

 

영국 안 갈 거야?

 

됐어
너무 멀어

 

게다가 짐도 널 두고 가길
바라지 않을 거야

 

내 걱정은 마
다 아는 것 같다며?

 

주말엔 뭐 할 거야?

 

조용하게 있게 될 거야

 

넌 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노력했었잖아, 기억 안 나?
오래 전에

 

잘 안 됐었잖아

 

안녕, 찰리

 

잘 자

 

패트릭!

 

맥주랑 럭키 스트라이크
한 갑이요

 

실례해요

 

안이 너무 덥죠?

 

그러네요

 

- 담배?
- 고맙지만 안 피워요

 

사람 진짜 많네요

 

토요일 밤이잖아요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부분 짝을 지어서
해변으로 가곤 하거든요

 

벌써 진하게들
놀고 있던데요

 

경찰 단속이 없다는 게
신기해요

 

늘 이래요?

 

전쟁 후부터는요

 

잘 된 일이죠
이단적이라고 할까

 

- 짐이에요
- 조지예요, 반가워요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집에 있다가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서 나왔어요

 

- 근처에 살아요?
- 골짜기 쪽에요

 

와!
산 지 오래됐어요?

 

38년도부터요
어디서 왔어요?

 

콜로라도요

 

그런데 여기 좋네요

 

해변에서도 가깝고

 

제대 후엔
여기서 살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저도 좀 이단적인가 봐요

 

- 먼저 들어가요
- 아녜요

 

미안해요

 

실례합니다

 

- 안녕
- 안녕하세요

 

맥주 한 잔 사줄래요?

 

임자 있는 몸인데요

 

그거 안됐네

 

실망이야

 

한 병 더?

 

쿠바는 10만의 예비군에
긴급 명령을 내려

 

지난 침공과 마찬가지로...

 

패트릭

 

스카치 한 병이랑
럭키 스트라이크 줘요

 

취소할게요

 

포터 군

 

안녕하세요, 선생님

 

- 우리 뭐 마셔요?
- 스카치

 

좋아요

 

난 여기 단골이야

 

근처에 살거든
알고 있겠지만

 

'캠포 트리 레인'에서 사시죠

 

아직 그걸 갖고 계시네요

 

인생의 작은 선물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여기서 뭐하고 있었나?

 

- 바이크 타고 있었어요
- 그게 다야?

 

모르겠어요

 

날 찾고 있었어?

 

어쩌면요

 

모르겠어요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요

 

무슨 일로?

 

오늘 수업 시간에 얘기한 것
같은 문제라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아뇨, 중요해요
수업은 늘 좋아요

 

다만 늘 과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는 내게
중요하지 않거든요

 

현재는?

 

현재는 지나가기만 바라죠

 

너무 지루하거든요

 

뭐...

 

오늘밤은 예외겠지만

 

왜요?

 

오늘밤은 오케이
현재는 노

 

오늘을 위해 마시지

 

오늘밤을 위해!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현재는 그렇게 지루하다면

 

미래는 어떤가?

 

어떤 미래요? 쿠바가 우릴
다 날릴지도 모르는데

 

죽음이야말로 미래지

 

미안해요
우울해지려는 건 아니었는데

 

우울한 게 아니라 진실이야

 

당장의 미래는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겠지

 

죽음은 우리의 미래야

 

맞는 것 같아요

 

현재를 즐기지 못 한다면

 

미래가 더 나을 거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나

 

맞아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하지만 사실...

 

모르는 거잖아요

 

오늘밤만 해도

 

솔직히...

 

요즘 늘 외롭다고 느껴요

 

- 그래?
- 네

 

늘 그런 느낌이에요

 

외롭게 태어났고
외롭게 죽는 거죠

 

여기 머무는 동안

 

절대적으로 이 육체 안에
갇혀 있다는 게

 

정말로 이상해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요

 

외부의 세계를
편파적인 지각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선생님이 진짜 누구인지
누가 알죠?

 

그렇다고 생각되는 걸
보고 있을 뿐인 거죠

 

난 보이는 그대로인걸

 

잘 들여다본다면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다른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몇몇 순간들이야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 그래?
- 네

 

얽매이지 않은
낭만적인 사람

 

사람들은 다들 그래요

 

나이가 들면 경험들이 생기고
그건 멋진 거라고

 

헛소리지

 

점점 더
멍청해지는 것 같은데

 

- 정말요?
- 절대적으로

 

그럼 경험도 쓸모없네요

 

그렇다고는 안 했다

 

친애하는 헉슬리의
글을 인용하자면

 

'경험은 일어난
무엇이 아니라'

 

'그 일어난 일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 수영하러 가요
- 좋아

 

왜?

 

테스트였어요

 

나이 들면 멍청해진다느니
거짓말 같아서 생각했죠

 

완전 얼빠진 일을
제안해보자

 

거절하거나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저 사람은 거짓말 한 거다

 

거짓말이 아니지?
너는?

 

절대 아니죠!

 

이리 오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가요

 

이리 오세요

 

이제 그만 가요

 

- 난 괜찮아
- 추워요, 가요

 

선생님 집으로 갈까요?

 

그래야지
그럼 어디로 가?

 

그렇죠?

 

- 제 정신이야?
- 뭐가요?

 

그렇게 갈 순 없어

 

우린 안 보이잖아요
모르셨어요?

 

선생님 풀어줘선
안 되겠는데요

 

금세 문제를 만드는
타입이세요

 

내가 그거엔 능하지

 

이마에서 피나요

 

욕실은 복도 끝에 있어
샤워하고 싶으면 해

 

선생님은요?

 

난 영국인이잖아
춥고 젖은 거엔 익숙하지

 

우선 그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어요

 

반창고 같은 거 있어요?

 

캠핑 가세요?

 

신경 쓰지 마

 

계세요, 찾아올게요

 

앉으세요

 

머리는 뒤로 젖히고

 

이번엔 메스칼린 때문에
반창고를 붙였다는

 

핑계는 못 대겠죠?

 

우선 젖은 옷부터 벗지

 

 

- 춥지 않아?
- 괜찮은데요

 

한 잔 마실래?

 

맥주 있으면 주세요

 

맥주밖에 없긴 해

 

가져올게

 

- 여기 혼자 사세요?
- 지금은 그렇지

 

건축가인 친구와
함께 살았었지

 

제 나이 또래에겐
이런 집은 천국이네요

 

원할 게 더 있기나 해요?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그게 네가 그리는
완벽한 삶이니?

 

그럼,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면

 

로이스는 어디다 끼워주지?

 

로이스요?
그 애랑 무슨 상관인데요?

 

둘이 사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멋진 녀석이고
우린 좋은 친구지만...

 

둘이 자는 사이냐고
물으시는 거죠?

 

- 그래서?
- 한 번 잔 적 있어요

 

왜 한 번뿐이지?

 

한 번뿐이라고 안 했어요
한 번 잤다고 했지

 

지금 로이스 얘기는
하기 싫거든요

 

몇 시죠?

 

내 시계 멈췄나 본데

 

저 그만 갈까요?

 

무슨 말을!
가서 맥주나 더 가져와

 

명령인가요?
명령인가요?

 

그렇다
그렇다

 

딱하군
딱하군

 

뭐라고 하셨어요?
뭐라고 하셨어요?

 

넌 왜 여기 있니?
넌 왜 여기 있니?

 

왜 사무실에서
내 주소를 물었지?
왜 사무실에서
내 주소를 물었지?

 

전 단지...
전 단지...

 

학교가 아닌 곳에서
만나고 싶었어요
학교가 아닌 곳에서
만나고 싶었어요

 

왜지?
왜지?

 

남들과 너무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남들과 너무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는데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는데

 

선생님한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선생님한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솔직히 오늘은
선생님이 걱정되네요
솔직히 오늘은
선생님이 걱정되네요

 

내가?
내가?

 

걱정할 게 뭐 있니?
걱정할 게 뭐 있니?

 

난 괜찮아
난 괜찮아

 

난...

 

난 괜찮아

 

살면서 완전히 명료한 순간을
아주 잠깐씩 경험해 보았다

 

그 짧은 몇 초간...

 

고요가 소음을 잠재운다

 

그리고 난 느낀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은 아주 예리하고

 

세상은 너무 신선해 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것처럼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지속시키기는 버겁다

 

그 순간들에 집착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처럼 사라져 간다

 

그러한 순간들 속에
내 삶을 살아왔다

 

그것들이 날 현재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정해진 대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정해진 그대로

 

그것은 온다

 

싱글맨
(A Single Man, 2009)